회장님 이력 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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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꼼지 작성일13-07-12 14:01 조회4,04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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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보다가 우연히 남원농악보존회를 보게되었는데 유명철 회장님의 이력을 보다가 60년도에 장구달인 최상근씨와 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순회를 했다고 되어있는것을 보고 뇌가 멍 해지는것을 느껴 이런 글을 남깁니다 전국에서 장구로 유명하고 최상근씨라는 이름을 갖은 분이면 同名 2人은 없을것으로 아는데 내가아는 최상근씨는 6.25사변 후에 그당시 전라북도였던 [금산.무주.전주.남원.정읍]에서 내노라 하는 꾼들이 모여 [금산농악]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라도.충청도.경기도 일부와.서울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경무대에 가서 판굿을 한것으로 유명하지요 인원이 10명중에 어린이는 없었던 것으로 알며 최상근씨는 60년도에 순회 한적이 없고 54년도로 기억 되며 58. 3. 1일부터 60. 3. 1일까지 금산군에서 약간의 지원을 하고 군행사에 참여 해주는 금산읍 중도1리 농악단체에 큰 행사에만 참석했던 분이지요 참고로 최상근씨는 1907년생으로 알고 있으며 거기에 김수동 황락주 김내연씨가 있지요 유명철 원장님은 42년생으로 54년도에 13세의 어린이가 최상근씨와 농악단체를 조직했다?? 정확한 답변 주세요 중도1리 농악단체원 이였던 김창영                        

 

댓글목록

남원농악보존회님의 댓글

남원농악보존회 작성일

네. 답변드리겠습니다.
 먼저 최상근선생의 전국순회공연은 이때가 처음일 것 같은데요,  류명철선생의 부친인 류한준선생이 이끄는 전라북도 대표팀이 46년 5월에 창경원(현 창경궁)에서 열린 제 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특등을 차지합니다.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전라북도에서는 도내에서 이름난 명인들을 전주에 모으게 되고 자연스럽게 좌도, 우도 두패가 결성되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좌도팀이 대표팀이 되어 대회에 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팀이 전국순회공연을 다녔다고 합니다.
 46년 5월 15일자 중앙일보에 당시의 기사가 있습니다. 최상근선생님은 장구 개인상 명단에 나옵니다.
 류명철선생과 최상근선생과의 만남은 류명철선생이 18세이던 1959년 남원 춘향제 농악경연대회에서 였다고 합니다. 류명철선생은 그 대회에 청소년들로 단체를 구성해서 상쇠로 출전하였고, 그 때 대회를 참가했던 최상근선생의 눈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금산농악단 최상근 일행' 이라는 포장걸립패의 치배로 발탁되었습니다.
 이 '최상근 일행'이 1961년도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금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동아일보 1961년 9월 29일 기사를 인용합니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28일 제5일을 맞아 낮 한시부터 시내 덕수궁 중화전 앞뜰에서 예정대로 충남?전북 양도의 경연이 있었다.(중략)
 전북의 농악은 남녀두'팀'이 등장하여 단연 이채-남성'팀'은 금산읍 농악만으로 에선 때 7'팀'가운데서 선발된 50대의 능란한 '팀'이고 여성'팀'은 남원읍 '춘향국악원' 원생들로 구성된 순여성농악단이다. 금산농악단(16명)의 연출은 13종목에 걸쳐'버라이어티'를 얻어 성공적으로 음의 조화를 이룬 독특한 명인예라 하겠다. 전 25종목에 '혁명공약'을 읊는 '혁명공약가'까지 들고 나온 '청춘국악원' '팀'의 여성농악은 아직은 하나의 시도라 하겠으나 꼬마 이춘화(7)양 외 2명의 '농부가'와 오갑순(18)양 외 2명의 장고는 장래가 촉망되는 열연이다.

라고 나옵니다.
 이대회에서 우승한 '최상근일행'은 부상으로 특별흥행허가권을 얻어 전국순회공연을 다녔다고 합니다. 63년도에 단체가 해산하게 되고 류명철선생님은 군대를 가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은 김정헌 저 '남원농악'에서 발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