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농악의 유래는 다른 지역의 농악과 마찬가지로
가장 멀리는 부족국가시대 전라도지역의 마한(馬韓)의 농공시필기
(農功始畢期)의 제천의식(祭天儀式)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때의 농악은 분명 이른바 ‘축원농악’ 형태의 농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유래를 파악할 수 있는 실제 자료들은 남원지역 각 마을들과 읍면들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 관련 전승 자료들뿐이다.

남원농악 역사의 유추

남원농악은 우선 이지역의 각 마을 혹은 고을 단위로 행해진 공동체의 제사의식인 마을굿 혹은 고을굿 형태의 ‘축원농악(祝願農樂)’과 마을 혹은 한 고을의 노동공동체의 공동노동을 주도하는 ‘노작농악(勞作農樂)/두레농악’ 형태의 농악이 먼저 이루어지고, 이로부터 좀더 전문적인 농악 굿패가 만들어져 다른 마을과 고을들을 두루 돌아다니는 ‘걸립농악(乞粒農樂)’의 굿패가 형성되었으며, 이로부터 전국을 상대로 하는 좀더 전문적인 걸립농악패인 이른바 ‘연예농악(演藝農樂)/포장걸립패농악’으로 발전했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며, 실제로 또 그런 자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농악은 모두 구비전승과 행위전승으로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유래와 역사의 고구(考究)를 정확하게 확정하기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남원농악의 좀더 구체적이고 분명한 유래와 역사의 탐구는 실제로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농악의 계보를 탐구해서 이를 통해 이 농악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정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현재 전승되는 전승 남원농악의 계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전승되는 남원농악들의 거의 대부분이 마을굿 형태의 소박한 농악들뿐이고, 그나마도 그 분명한 전승들은 거의 다 인멸되었다. 그 중에서 현재 그 전승이 가장 분명하게 남아 이어지고 있는 남원농악은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독우물’의 농악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남원 ‘독우물굿/독우멀굿’의 계보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남원농악은 이 독우물굿을 중심으로 하여 그 가장 분명한 남원농악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그런데 이 ‘독우물굿’은 이 마을의 소박한 마을농악의 상태에 있었으나, 대체로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이 마을의 상쇠인 류한준(1900-1952) 옹이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에 거주한 바 있었던 전판이(1869-?)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상쇠로부터 마을농악이 아닌 좀더 발전된 걸립농악 혹은 연예농악 형태의 좀더 전문적인 농악 예능을 전수 받아 일종의 걸립농악 형태로 발전하여 좌도의 여러 지역으로 걸립농악을 하고 다니게 되면서 ‘남원농악’으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다시 류한준 옹은 해방 후 전국적인 ‘포장걸립농악패’의 상쇠로 전국을 돌아다면서 호남좌도농악을 공연하게 되면서 이 마을농악은 일종의 전국적인 연예농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당시(1948년경)의 전국을 상대로 했던 남원농악의 굿패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상쇠: 류한준(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부쇠: 강태문(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삼쇠: 김수동(진안군 용담면)

• 끝쇠: 박오복(전주시 우아동)

• 수징: 장희덕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부징: 임병전(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수장구: 장두만(진안군)

• 부장구: 김상원(장수군 장계면 장계리),

• 삼장구: 최상근(진안군 용담면),

• 사장구: 손판돌(완주군 삼례음),

• 수버꾸: 정오동(전주시 우아동),

• 부버꾸: 한판옥(장수군 장계면 장계리 방아실),

• 삼버꾸: 김방현(이리)

• 사버꾸: 장용덕(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오버꾸: 주기환(충남 금산군 제원면),

• 육버꾸: 강막동(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끝버꾸: 홍유봉(전주시 우아동)

• 대포수: 임병삼(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 태평소: 장택근(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독우물)


이러한 남원농악의 계보는 상쇠 류한준 옹으로부터 다시 같은 마을의 제자 강태문 옹(1903-1965)에게로 이어졌으며(김익두 외 (1994) 앞의 책, 230-234쪽 참조)강태문 옹으로부터 다시 상쇠 류한준 옹의 친자제인 류명철(현 남원농악 상쇠)선생에게로 계승되었다(김익두 외 앞의 책, 같은 쪽 및 홍현식 외 (1967) 『호남농악』 참조). 따라서, 현재 전승되고 있는 남원농악의 중심 계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