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농악보존회

남원농악의 긍지와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는
남원농악보존회의 지나온 발자취와 주요활동 내용

  • 1869년

    1대 상쇠 전판이 출생.

    1900년

    2대 상쇠 류한준 출생.

    1903년

    3대 상쇠 강태문 출생.

    1930년

    류한준과 강태문이 전판이로부터 농악을 배움.

    1942년

    4대 상쇠 류명철 출생.

    1946년

    류한준패 결성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1위 입상.
    포장걸립 시작.

    1952년

    류한준 사망. 류한준패 해산.
    강태문이 이끄는 "독우물농악단" 결성.

    1957년

    류명철 "독우물농악단" 에 입단하여 강태문으로부터 농악을 전수받음.

    1958년

    강태문이 남원시 조산동으로 이주하여 <조산농악단> 결성.

    1959년

    남원시 "금지면 청소년농악단" 결성.
    "천거리 농악단" 결성.
    포장걸립패 "최상근 일행" 결성. 류명철 합류.

    1963년

    "최상근 일행" 해산.

    1970년

    "남원농악단" 결성.

    1994년

    류명철 선생 농악강습 시작.

    1995년

    2월 24일 남원 금지면 상귀리 류명철 선생 자택에서 정월 보름굿 공연.
    2월 11일∼19일까지 최초로 대학생 전수 시작(성균관대, 조선대 연합).

    1997년

    남원농악보존회 결성.
    제1회 남원농악발표회 개최. 금지면 옹정리에 남원농악전수관 개관.

    1998년

    류명철 선생 전북무형문화재 7-4호 남원농악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

    1999년

    1월 9일 남원시립농악단 창단. 남원농악전수관 이주 합병.
    월 3일 제1기 남원시민 농악무료강습 시작.

    2000년

    UNESCO 주최 The 4th Arirang Youth Camp 20여개국 100여명 풍물 강습.

    2001년

    일본 후쿠오카 이시아리따주 문화교류 공연 참가.

    2002년

    9월 28일 남원농악 “완판”발표회.

    2004년

    한·일 국회의원 친선 축구대회 및 일 대사관 초청 공연.
    참가.

    2005년

    전주 세계소리 축제 Daily Parade 참가.

    2006년

    11월17일 남원농악보존회 전북무형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
    남원농악보존회 개편, 총회 개최.

    2007년

    11월17일 남원농악 보존회 전북문형문화재 7-4호 지정 1주년 기념공연.

    2008년

    남원 농악 문굿 발표회.

    2012년

    6월 30일 ~ 7월 1일남원농악 학술대회

    2013년

    7월 28일호남 좌·우도 농악 명인 한마당
    (정읍농악 초청공연)

    2014년

    7월 27일영·호남 농악 명인 한마당
    (진주삼천포 농악 초청공연)

    2015년

    7월호남농악 이수자 열전 한마당
    8월 2일남원농악과 함께 하는 전통연희 한마당
    (웃다리 농악단 초청공연)
    10월 31일남원농악 학술대회 및 판굿발표회

    2016년

    5월 14일 ~ 16일춘향과 함께 하는 삼도농악 한마당
    10월거제영등오광대 초청공연 - 영호남 전통연희 한마당
  • 단체명

    남원 농악 류한준패(1946-1952)

    조직 상쇠 : 류한준(남원금지)
    부쇠 : 강태문(남원금지), 김수동(진안용담), 박오복(장수)
    징 : 장희덕(남원금지) 임병전(남원금지)
    장구 : 장두만(진안), 김상원(진안), 이채봉(전주), 최상근(금산), 손판돌(완주)
    소고 : 정오동(익산), 한판옥(장수), 주기환(금산), 김방현(익산), 양국원(남원금지), 장용덕(남원금지), 강막동(남원금지), 홍유봉(전주)
    대포수 : 임병삼(남원금지)
    태평소 : 장택근(남원금지)
    남원사람으로만 구성할때는 장고/ 노정만, 임병권, 소고/ 양국원, 장용덕, 강막동, 강기용, 장현주, 김천모, 김상인, 태평소/장택근 등이었다. 1952년 류한준 사망으로 해산됨.
    활동 1946년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를 위한 도대항전 이 전주에서 열리는데 전주여관에서 묵던 남원팀의 장구잽이 노정만이 최상근의 장구소리를 듣고 남원으로 돌아감. 남원팀이 도 대표로 뽑힘, 도청 앞에서 도 대항 1등 기념 사진을 찍음. 1946년부터 류한준은 한창 굿을 치고 다녀 재산을 많이 모았다. 6.25전까지 포장걸립을 다니다가 6.25때 단체가 해산되었다. 류한준은 순창 팔덕면 월곡리에 굿치러 갔다가 밤굿을 친다고 지서에 끌려가 매를 맞은 후유증으로 사망. 류한준의 사망 이후 해산되고 남원금지 출신들의 잔여인원을 규합해 강태문이 이끄는 독우물농악단이 출범
    단체명

    남원 조산농악단 강태문패(1958-1965)

    조직
    상쇠 : 강태문 (남원 조산동)
    부쇠 : 왕판옥(남원 수지), 양??(미상), 류명철(남원 금지)
    징 : 박종래(남원 조산동)
    장구 : 고광진(남원 조산동), 정순용(남원 향교동), 장택술(남원 금지)
    소고 : 임원규(금지 옹정), 김산호(금지 옹정), 임창규(금지 옹정),
    류상길(남원 조산동), 류상열(남원 조산동), 하봉호(남원 조산동)
    활동 1958년 강태문이 남원시 조산동으로 이주하여 조산농악단을 창단, 류명철은 16세인 1957년도 음력 정월 초사흗날 독우물농악단의 강태문을 따라 전남 담양으로 마당밟이를 나가면서 농악에 입문하였다. 강태문, 왕판옥, 고광진, 하봉원을 따라다녔는데 소년 류명철에게 주어진 배역은 농구였다.1959년에는 왕판옥을 제치고 부쇠를 치게 되었다.
    단체명

    남원소년농악단(1959)

    조직 상쇠 : 류명철
    부쇠 : 서정영
    징 : 서희택
    장고 : 장택술, 정하동
    소고 : 윤동섭, 윤재랑, 류영철, 정하중, 황의청, 김광수, 정하덕, 박형도, 김양수 김완주, 류일호, 류동진, 김영수, 박형선, 정하송
    활동 4월 초파일 농악경연대회에 류명철은 금지면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4H농악단을 이끌고 상쇠로 출전, 류명철의 청소년농악단은 이 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음. 금산팀(김수동패), 정읍팀(전사섭패), 곡성팀(기창수패), 조산팀(강태문패) 등을 모두 만남. 현 전북무형문화재 정읍농악 고깔소고놀음 보유자김종수 등을 처음 만났다. 이때 최상근은 류명철이 류한준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고 그의 눈에 든 류명철은 이후 최상근 일행의 포장걸립에 합류하게 되었다.
    단체명

    천거리 농악단(1959-?)

    조직
    상쇠 : 이상열(남원 천거동)
    부쇠 : 왕판옥(남원 수지), 류명철(남원 금지), 노해선(남원 천거동)
    징 : 김정면(남원 왕정동)
    장구 : 정순용(남원 향교동), 황금출(남원 천거동), 김정길(남원 천거동),
    손해천(남원 천거동)
    소고 : 임원규(금지 옹정), 김산호(금지 옹정), 임창규(금지 옹정),
    류상길(남원 조산동), 류상열(남원 조산동), 하봉호(남원 조산동),
    김광수(남원 금지), 정점식(남원 천거동), 김흥수(남원 천거동)
    활동 조산농악단은 강태문이 노환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자 광한루 인근의 천거리(현재 남원시 천거동)농악단으로 재창단된다. 천거리 농악단은 류명철, 김광수, 정점식, 김흥수 등 네 명의 치배가 ‘최상근 일행’에 발탁되어 가면서 활동이 시들해졌다.
    단체명

    금산농악단 최상근 일행(1959-1963)

    조직
    단장 : 김관성 자유당때 국회의원을 역임
    부단장 : 최상근, 총무000, 재무000,
    사업부000 : 사전에 공연단이 공연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여 행정관청의 공연허가를 받고 단원들의 숙박 장소, 식사 예약 등을 담당.
    경비000 : 당시에는 포장이 허술하여 포장을 찢고 들어오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경비는 공연 시작 전과 공연 도중에 포장 주위를 순찰하며 구경꾼들이표를 구입하지 않고 몰래 잡입하지 못하도록 방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도000 : 기도는 포장걸립을 하는 공연단이 들어오면 자릿세를 요구거나 행패를 부리는 지역 건달 등의 횡포로부터 공연단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보통 공연단을 계속 따라서 기도 역할을 하는 사람 1인과 공연이 열리는 해당 지역 토박이 건달 중에서 한 명을 고용하여 2인이 기도의 역할을 수행했다.
    상쇠 : 김수동(진안)
    부쇠 : 박오복(장수), 류명철(남원), ×××(미상)
    징 : 임××(금산.성명 미상)
    장구 : 최상근(금산), 손판돌(완주)
    소고 : 정오동(산), 한판옥(장수), 주기환(금산), 홍유봉(전주), 김양수(금산),
    김흥수(남원), 정점식(남원), 김광수(남원), 대포수:이봉춘(정읍)
    활동 1959 전북 금산에서 최상근을 중심으로 한 포장걸립 단체. 추석 전에 조직하여, 추석 때부터 포장걸립에 나섬, 그해 겨울까지 다니다가 추워서 들어옴.
    1961 5.16이 나서 쉬다가 평정이 되자 가을에 멤버들을 소집, 소고를 보충.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위한 도 대항 농악대회(구형무소 자리), 금산, 김제, 정읍, 남원춘향여성농악단이 출전, 금산팀이 선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금산팀이 농악부문 1등(금상), 문화공보부에서 비원으로 데려가 촬영, 여성농악단도 함께 촬영(내각수반: 송영찬, 전북도지사 : 김인씨 육군준장, 공보부장관: 이원우) 농악 1등 기념으로 포장걸립하는 허가증을 받음. 가을에 동대전에서 며칠, 서대전에서 며칠 포장걸립을 함, 김덕수(5세) 만남
    1963 여성농악단의 활성화로 흥행 실패, 1963년 5월 대전에서 해산.
    단체명

    남원농악단(1970-?)

    조직
    상쇠 : 류명철
    부쇠 : 신현우(남원 금지), 노해선(남원 천거동)
    징 : 장동렬(남원 금지), 장진연(남원 금지)
    장구 : 황금출(남원 천거동), 손해천(남원 천거동), 장택술(남원 금지),
    양병수(남원 주생), 양병주(남원 주생)
    소고 : 김산호(남원 금지), 임원규(남원 금지), 임창규(남원 금지),
    장현태(남원 금지), 하봉호(남원 조산동), 김광수(남원 천거동)
    활동 류명철을 포함하여 최상근 일행에서 활동했던 남원출신 농악인들과 독우물농악단, 조산농악단, 천거리농악단 등에서 활동하던 남원지역의 농악인들 중 잔여 인원들이 세력을 규합하여 1970년에 남원농악단을 창단하였다. 이 남원농악단의 구성원들 중 김흥수, 정점식, 김광수 등 3인은 당시까지 활동하던 여성농악단의 소고잽이로 전속출연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류명철은 여성농악단에서 강사와 찬조출연 등으로 활동하였다. 남원농악단은 전반적으로 농악이 쇠퇴하던 무렵이어서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